본문 바로가기

[Essay] 오늘도 자라나는 중 :)

[Essay]#01 - "12월"

 

매해 나는 반성문을 쓰듯 12월을 적었다.

화려하게 빛나는 꼬마전구로 물드는 거리를 걷는 내 표정은 모든 색깔을 빼앗겨 버린 듯 칙칙하기만 했다.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린 일 년이 못내 아쉬웠다.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하고 무의미한 시간을 흘려보냈다는 자책감에 괴롭기도 했다. 계절성 우울증이란 병도 있다던데, 연말만 되면 기분이 가라앉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닌가 보다. 조금만 천천히 가자, 늑장 피우는 우리는 안중에도 없는 듯 시계는 바쁘게 달려 올해도 어김없이 12월은 돌아왔다.

방금 막 결제한 새 다이어리를 안고 교보문고를 나서며 설레었던 1월, 생일 기념으로 떠난 보홀에서의 추억으로 한 땀 한 땀 소중히 자수를 놓은 4월, 유독 더웠다는 올여름 내리쬐는 햇빛보다 서늘한 밤공기를 머금은 새벽 가로등 불빛이 더 익숙했던 7월… 더듬대는 손끝으로 지나간 시간을 넘겨보았다. 머뭇거리며 마지막 페이지에 도착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후회도, 비난도 아니었다. 조금 커진 키로 더 높고 멀리 세상을 바라보게 된 나 자신이었다.

도파민 폭발하는 짜릿한 이벤트도, 대단한 성과도 없이 비슷비슷한 모양으로 만들어 간 334일의 흐름 속에서 기특하게도 나는 조금씩 꾸준히 자랐다. 어떠한 특별함 없이도 내가 자란 시간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나는 잘했는가?”를 물으며 자신을 괴롭히고 있진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올해는 “나는 자랐는가?”를 물으며 잔잔한 일상에서 배어나는 슴슴한 맛을 음미하는 시간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

'[Essay] 오늘도 자라나는 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Essay]#02 - "존경"  (0) 2024.12.04